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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을 다루는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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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기
기사입력 2009-08-29

▲ 강상기 시인이 천광스님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취재부

경남 산청군 금서면 지막리 천광사에 가면 천광스님이 계신다. 금년 7월7석 날이 그 분의 칠순이신데 이날 스님을 만나 뵈었다.
 
▲ 천광스님     © 취재부
내가 천광스님을 처음 뵙게 된 것은 아마 5년 전 진안 마이산 금당사 주지로 있는 성호스님과 합석한 자리로 기억한다. 진안의 금복 회관이라는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데 내가 건강이 안 좋다고 했더니 그게 산소 바람이라고 했다.
 
그게 무슨 이유가 되냐고 물으니까 조부모 산소에 망부석, 비석, 상석을 했느냐고 물어서 그렇다고 했더니 그게 이유란다. 그 산은 기가 약하기 때문에 돌로 눌러 놓으면 좋지 않다고 했다. 기관지도 좋지 않고, 위도 좋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사실 그랬다.
 
그러면 해결책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조부모 산소 20미터 뒤쪽에 허방을 파놓으라고 했다. 무덤 뒤에는 능선이라서 그만한 거리가 나오지 않는다고 했더니 그렇지 않다 가보자고 해서 현장을 스님과 함께 다음날 답사하게 되었는데 과연 충분한 거리가 되었다. 무덤뒤쪽 숲에 허방을 파는 장소를 알려 주었다.
 
무덤에 갔을 때 내가 무덤을 둘러보는데 할머니께서 옆에 와계신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할머니의 사랑을 많이 받았군요. 제가 장손이니까요. 이 무덤 자리는 할아버지께서 잡으셨지요? 이 자리를 잡기 위하여 이 산을 다 살피셨군요.
 
그런데 이 무덤 자리는 한번 옮겨갔다가 다시 온 것 같아요. 사실 그렇다. 조모님과 합장을 하기 위하여 다른 데로 옮겼다가 좋은 일이 없어 다시 이 자리로 모셔 합장을 한 것이다.
 
어떻게 그런 사실도 알 수 있을까? 정말신기하기만 했다. 만일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여기 조부모님 아래에 모시라고도 했다. 조부님이 묘를 능선에 잡은 것은 후손들이 그 아래로 묘를 쓰도록 한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조부모님 아래쪽에 부모님 가묘를 했는데 작년에 어머님이 작고하셔서 그 자리에 안치해 드렸다.
 
이런 인연으로 해서 천광스님을 자주 뵙게 되었고 주변의 지기들에게 소개를 해서 많은 사람들이 그 분을 뵙고 대화도 나누었지만 나는 그 분의 살아온 삶과 영안이 열려 영계를 살피는 일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다.
 
스님은 11살 때 해인사로 출가했다. 6.25 난리 통에 부모님이 절로 가라고 해서 간 것이다.일종의 밥그릇 줄이기였다. 7남매에다 할머니, 부모 합해서 10명의 식구가 적은 농사일로 살아가기가 벅찼던 것이다.
 
해인사는 그때 자윤 스님이 초대주지로 계셨는데 그 밑에서 한학에 정진했다. 22살에 군에 입대해서 운전교육대에서 특기병으로 운전을 배워 김재명 3관구사령관 운전병으로 차출되어 근무하다가 제대를 했다. 제대 후 부산 냄비공장사장의 쓰리꿔터 기사로 취직했다.
 
부산 신발공장사장 운전기사생활도 했다. 부산 동명목재사장 운전기사생활도 했다. 이렇게 직장생활을 전전하다가 거짓투성이인 세상에 환멸을 느꼈다. 생활이 나아지지 않고 이렇게 방황하면서 적응하기가 힘든 이유가  몸에 신이 붙어 있어서 그렇다는 어느 역술가의 말을 듣고 그렇다면 나한테 있는 신이 누군지 알아나 보자는 오기가 생겨 드디어 32살 나이에 지리산으로 들어갔다.
 
동짓달에 입산했는데 지리산 천왕봉 아래 절벽바위로 되어 있는 천왕문으로 모포 1장과 검정고무신 3켤레, 양말 2켤레를 준비해 갔다. 생식을 하며 지냈다. 솔잎을 주로 먹고 풀잎과 뿌리를 먹으면서 재냈는데 겨울추위가 몹시 힘들었다.
 
모닥불을 피워놓고 지내고 돌을 데워서 그 돌을 안고 지냈다. 얼굴은 모닥불을 쬐다 보니 검정송진이 절어서 이상한 짐승의 모습이 되어버렸다. 한번은 덫을 놓아 짐승을 잡는 사람 둘이 저것이 사람이냐 짐승이냐고 수군거리며 지나가기도 했고, 봄이 되자 나물 캐러 나온 부녀자가 혼비백산하여 도망가는 모습도 봐야 했다.
 
지리산에 들어간 지 3개월이 지나고 봄이 왔다. 갑자기 귀신이 보이기 시작했다. 전혀 상대할 사람이 없는 깊은 산속에서 장난치고 놀 수 있는 상대가 생겨 좋았다. 귀신은 응시하기를 잘하고 말은 잘 하지를 않지만 말을 할 때는 어른이 애기 취급하듯 하는 말투로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스님이 알게 된 것은 사람에게는 본인이 모르는 주인이 있다는 것. 저승도 이승과 같이 똑 같은 동물이 있고 사람에게는 사람의 주인이 있다는 것. 이승에서 내가 사는 것은 대리자의 모습으로 살아간다는 것. 이승은 육신과 영혼이 함께 있는 것이고 저승은 육신이 없이 영혼만 있는 세상이라는 것.
 
지리산에서 6년이 지났다. 어느 날 고생하실 어머님 생각이 나서 하산했다. 머리는 허벅지 아래까지 자랐는데 칡넝쿨로 묶었다. 정월 한 달 동안 집에 머물렀는데 미친 줄 알고 찾아온 사람들이 면담을 하고난 뒤에는 도사가 나타났다고 하면서 쌀을 갖다 주어서 1달 만에 14가마가 되었다.
 
1달 동안 집에 머무른 뒤에 다시 입산하였다. 이번에는 산청군에 있는 필봉산으로 들어갔다. 토굴 하나 지어놓고 18년 동안을 지냈다. 하루는 필봉산 토굴에서 보니 금서면 지막리 지리산 자락에 빛이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거기에다 절을 지었는데 그게 지금의 천광사가 되었다.
 
절을 지은 지 10 여년이 지났다. 스님은 그동안 많은 사람을 고통에서 벗어나게 했다. 산중생활에서 얻은 온갖 풀과 뿌리의 성질을 터득해서 환자들의 고질적인 병을 고쳐주었다. 무덤을 바라보면 죽은 이의 생전의 모습이 보이고 후손들의 생활도 보인다는 것이다. 사람을 보면 영가(귀신)가 붙어 있는 것이 보인다.
 
천광사 대광명전에서 바라보면 오른쪽엔 스님이 18년 동안 수행했던 필봉산이 보이고, 왼쪽으로는 유의태와 허준이 지낸 왕산이 보인다.
 
아마 스님에게는 약사신이 임했나 보다. 지금껏 내 이야기가 좀 황당한 듯하지만, 나는 신비주의자는 아니다. 다만 이렇게 사는 분도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을 뿐이다.
 
<강상기 주필>
 
▲ 천광스님이 천광사를 찾은 손님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취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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